[arcom 연구보고서] 기업 업무공간의 창의성 제고 연구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경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창의적 발상을 통한 혁신이 기업 생존 측면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경영 화두로 던져지고 있는 지금, 창의 및 혁신의 범위가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 차원, 조직 업무의 차원뿐 아니라 업무 공간과의 상관성 논의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업무공간’ 이라는 주제로 기업 업무공간의 변화 추세를 검토하였으며, 검토 결과를 토대로 혁신적 업무공간의 지향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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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02

이종호(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

<기업 업무공간의 창의성 제고>를 연구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종호 교수는 현대적 업무공간의 기원에서 현재에 이르는 역사를 살펴보고, 실제 업무 공간을 문화적 공간으로 설계한 사례를 조사하여 기업 업무 공간에 요구되는 창의 및 혁신 과제를 검토하였다. 인터뷰를 통해 기업의 업무 공간에서 창의성을 구현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을 고민하게 된 계기와 연구 진행 내용, 창의적 업무 공간을 고민하는 기업을 위한 제언 등을 질문하였다.

 

Q

창의성은 세계적인 화두입니다. 건축가란 인간의 삶을 반영하고 조직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던데요. 그만큼 시대정신이랄까, 인간과 사회의 변화상에 대해 관심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기업과 문화예술의 접점을 모색하는 이번 사업에서 어떻게 시대정신에 입각해 업무공간의 창의성을 연구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건축은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과 무관치 않으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면밀히 관찰하고 그 변화되는 양상에 따라서 건축 또한 변화하고 바람직한 변화의 양상을 만드는 조건을 갖춰주기도 합니다.

 

예전에 런던과 덴마크의 업무공간을 실제로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주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런던과 합의 자본주의로 운영되는 덴마크의 업무공간들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런던의 오피스는 효율적이고 관리가 용이한 공간을 추구하는데 반해, 덴마크의 오피스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영미권의 효율적인 업무공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인간과 일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남다름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책상의 높낮이가 매일 달라지는데 이는 개인의 상태와 기분, 업무의 성격에 따라 조절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일에 대한 인식의 기본자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공간 역시 인간의일터의 개념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많은 기업들이 점점 복잡해지고 예측 불허해지는 환경 변화에 직면하여 단절적 혁신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식경영의 프레임을 바탕으로 조직원 개인의 몰입에서 비롯되는 창의성의 함양, 조직 안팎으로 맺어가는 관계의 폭넓음과 견고함의 추구, 기업의 업무공간과 지식과 같은 유무형의 자산 역시 창의적으로 설계되어야 함을 본 사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개념 틀 안에서 기업 업무공간의 창의성을 고민하는 일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으며, 시대정신으로서도 연구되어야 할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요즘은 창의성이 중요한 키워드지만 예전에는 또 다른 요구가 있었을 텐데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대/사회적인 요구와 그에 조응한 업무공간의 변천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A

본격적으로 기업들이 업무공간을 조성하면서일터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100년도 안됩니다. 기업 업무공간의 역사를 되짚어보니, 공간의 형태나 양식을 비롯한 양상에서 기업의 일과 일터에 대한 인식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지요. 불과 10~20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이 사무직 노동자(White Collar)조차도효율을 위해 통제되고 관리된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합리성의 맹신에 대한 회의와 반성으로 비롯한 전후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의적 사고가 업무공간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뉴 바빌론 프로젝트같이 인간의 속성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하는 인간으로 규정하고 일을 작업과 노동을 넘어 인간의 삶을 고양하는 유희로 보는 급진적인 건축까지 등장하기도 하였지요. 이렇게 기업 업무공간의 추이를 보는 통찰을 갖게 된 것이 건축가인 저 자신에게도 큰 소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최근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업무공간으로 구글이나 NHN 등이 주목받고 있는데요. 창의적 업무공간을 디자인하는 기업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말씀해 주세요.

 

A

외국 뿐 아니라 우리 기업들도 이제는 단순한 효율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시대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무언가 시도를 하고 있는 기업들은 구글이나 NHN과 같이 주로 높은 생산성으로 많은 이윤을 창출하여 어느 정도 기업 공간의 창의성을 염두에 둘만한 여유가 있는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미래에는 역으로 시공간적으로 조직원의 창의성이 발현될 만한 틈과 가능성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데에서 기업의 혁신과 성장, 혹은 지속가능성이 발현될 것이라고 봅니다. 여건이 되어서가 아니라, 창의성이 발현되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기업들이 혼돈의 시대에 살아남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Q

한국의 기업들이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공간 사례를 연구하셨는데요. 어떤 경향성이나 특징이 나타나고 있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현재 포스코, 다음 커뮤니케이션, NHN, 구글코리아, 넥슨 등 다양한 기업들에서 시도하고 있는 기업 업무공간의 창의성 추구는 대부분 유희형 업무공간(Casual Office)을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겉만 아름답게 치장하고 장식하려는 데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변화에 따른 주, 부 공간의 재배치가 아니라 부 공간의 팬시화, 다양화에 그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부 기업의 사례는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감각적이지만, CEO나 리딩(leading) 그룹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지 실제 업무의 성격이나 조직원의 요구가 반영되었다고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 건축적으로는 잘 만들어진 사옥이라도 조직원들이 업무를 창조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요? 저는 공간을 만드는 주체와 과정에 그 방점이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창의성이 잘 발현되도록 세심히 설계한 공간이라도, 그 공간을 만든 주체가 한 사람, 혹은 소수의 리딩 그룹이고 또한 만드는 과정 자체에 조직원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전체 공간의 5~10% 만이라도 실제로 직원들이 마음대로,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구성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 조직원들이 피고용인의 태도로서 수동적인 일의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만 해도 제가 피고용인으로서 있을 때와 고용주로써 있을 때의 차이가 상당합니다. 이렇듯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간극을 극복하고, 피고용인의 최대한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들의 절대적 자유가 보장되어 다양한 실험이 일어나고 때로는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틈새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Q

미래적 혹은 대안적 업무공간으로창발형 공간(Space of Emergence)’을 말씀하셨는데요, 창발, 창발형 공간의 개념과 이것이 미래적 또는 대안적 업무공간이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기업에서 창조 인재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굳이창발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단순히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인창조, 창조의 가능성을 의미하는창의와는 달리예기치 않게 솟아 나온다여기에 방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간으로 예를 들면, 2002년 월드컵 때의 광화문과 종로 일대의 붉은 악마의 응원 공간, 각종 촛불집회 공간 등 정부나 월드컵조직위원회, 또는 시민단체 등과 같이 어떤 통제 기관에서, 특정한 계획에 따라 조직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가 인터넷과 방송매체, 주변과의 접촉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만들어낸 공간이 창발적 공간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창발형 공간으로 제시하신 Nortel HQ의 사례에서가로공간에 특별히 주목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저는 창발이 잘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의 조건을 복잡함 속에서 구성원들 사이에 여러 차원의 비공식적 만남이 뜻하지 않게 일어날 수 있는도시와 도시 내에서도 이러한 우연한 사건들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특히가로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가로공간에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밖에 없고, 쇼윈도와 노점상, 버스커 등 다양한 사건과 이야기들이 발생합니다.

 

또한가로공간 Corridor로 보느냐, Street으로 보느냐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Corridor는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개념이며, Street은 그 자체가 고유의 공간으로 인정받는 개념입니다. 발터 벤야민이 지적했듯이, Street은 사람들의 목적 없는 산책이 일어나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의 업무공간도 이 Street의 개념으로 근본적인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결제를 받기 위해 지나가는 길목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동료를 만나거나, 전혀 새로운 프로젝트를 꾸밀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나 사건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바탕으로 기업 업무공간의 구성을 달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Nortel의 사례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벤치마킹의 대상이 미국의 전형적인 중소도시의 가로공간이었다는 점입니다. 직선의 교차 안에, 획일적으로 구획된 공간은 중세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오랜 세월을 걸쳐 자연 발생한 미로 같은 길들이 만들어 내는 풍부한 느낌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이 점이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우투(How-to)의 문제가 저희에게 남을 것 같습니다.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업무공간을 원하는 기업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요? 또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단체들이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A

구체적인 하우투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성취해야할 목표나 맞춰야할 정답을 밝혀내는 것보다도 회사의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춰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지금 있는 이 사무실의 4층도 미리 사용 주체나 성격을 규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더니, 매번 새로운 주체들이 점유하여 다양한 일들을 벌여내는 흥미로운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에게 드리고 싶은 한 마디는, 관리와 통제의 끈을 미련 없이 놓을 수 있는 공간적/시간적 비율을 정하시고 실천하시라는 것입니다. 5%, 10%, 조직원의 절대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시공간을 조금이나마 확보하고, 소정의 예산을 투입한 후,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감과 조직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신나게 새로운 일들을 벌일 것이고, 누군가는 불평을 할 테지만, 그 불평조차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누군가를 수동적 자세에서 끌어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업은 물론이고 세상 전체가 즐거워질 것입니다.